방학을 맞아 경기도 역사교사들과 함께 대마도를 답사했다. 대마도를 향하는 배의 창밖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바다를 보노라니 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1940년대 초반 일제 강점기에 광산에서 일하기 위해 이 바다를 건너셨다. 당시에는 식민지인으로 그들의 엄청난 괄시를 받으면서 짐짝 같은 취급을 받고 이 바다를 건넜으리라. 일본이 어디쯤 위치하고, 어떤 곳인지도 모르면서 이 바다를 지나셨을 것이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보겠다고 두려움을 숨기면서 이 바다를 건넜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아버지와 같은 분들의 고통이 있었기에 나는 좋은 배를 타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지인들과 함께 즐기는 마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아버지가 가셨던 훗카이도는 아니지만 배 밖으로 보이는 바다를 통해 70여 년 전의 아버지 체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대마도는 우리나라의 어느 곳과 비교해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냥 평범한 섬에 불과했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우리 관리와 상인들이 수없이 경유해서 일본으로 향했던 섬이다. 조선의 이종무가 이 섬을 정벌하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가장 큰 도시인 이즈하라의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유적들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었다. 예쁜 불상에서는 우리 문화의 흔적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최익현 순국비를 보면서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단식으로 저항해야만 했던 결연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면세품을 싸게 샀다고 웃음 짓는 관광객들의 얼굴이 겹쳐지기도 했다.
제주도의 40%에 해당하는 넓이에 인구가 4만 정도가 살고 있는 대마도에서 우리와 다른 점은 도로가 매우 좁은 것이었다.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하여 무리하게 도로가 넓혀지는 우리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사람들은 1차선의 길을 이용하면서도 서로 기꺼이 양보하고, 거리에는 쓰레기를 볼 수 없는 풍경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하는 점이다. 요즘 우리나라의 학교에서는 용역을 주어서 화장실이나 복도를 청소하고, 교실은 학생들이 청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교실 청소만 하면 되지만 담임선생님이 솔선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횡단보도에서는 신호가 무색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건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의 질서 의식과 책임감 등은 부러울 정도이다. 진정으로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질서 의식부터 앞섰으면 하는 생각이 커진 답사였다. 그리고 한국을 폄하하는 망언을 하면서도 한글 안내판 많이 만들어 우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일본의 이중적인 면도 읽을 수 있었다.
우장문 대지중학교 수석교사ㆍ동아시아전통문화연구원 < 저작권자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