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지역의 선돌
선돌(立石)은 우리나라의 각 산천과 마을에 널리 분포되어 왔는데 그 기원은 선사시대로 올라간다. 각 지역에 있는 이 선돌들은 많은 시간과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오는 이유는 개인 또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이나 개인의 화를 막아준다는 믿음이 남아있어 보호해왔기 때문이다.
우리고장 용인에도 다섯 곳에 선돌이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인 선돌로는 원삼면 사암리에 5기(현재 3기만 복원), 원삼면 두창리에 1기, 남사면 창리에 1기, 포곡면 유운리에 2기, 양지면 주북리에 2기 등 총 11기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이 무덤이나 제단 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돌도 세운 의도가 있는 것이다. 용인 지역의 선돌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돌은 또 그 위치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기능이 달라지는 것이다. 고인돌과 근접한 거리에 위치한 선돌은 무덤과 관련된 어떤 기능을 했을 것이고, 논밭에 위치하거나 얕은 동산에 위치한 것들은 대개가 농경과 관계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위치한 경우는 지금의 장승과 같이 마을을 지키는 기능을 했을 것이다. 우리지역의 선돌도 기능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덤과 관련된 선돌의 기능인데 이는 오늘날 무덤에 세우는 망주석의 역할을 한 것이다. 주북리 선돌은 고인돌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러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선사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먹거리이기에 선돌도 농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선돌이 농사의 풍요와 관련된 예로는 전북 정읍군 고비면 입석리와 충남 논산군 두마면 입암리 옆에는 농소리, 경북 금릉군에는 농소면 입석동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러한 지명은 선돌 축조가 농경의 풍요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았던 당시의 문화적 배경의 소산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기능을 했던 용인의 선돌로는 사암리, 창리, 두창리 선돌을 꼽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수호적 기능을 하는 선돌이다. 수호의 기능은 벽사적(辟邪的) 기능과 수구(水口)막이의 기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벽사적 기능은 지금도 마을 입구에 세워지고 있는 장승의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될 것이고, 수구막이의 기능은 하늘이 노하여 비가 내려서 홍수가 나는 것을 막아보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용인 지역에서 벽사적 기능을 했던 대표적인 것은 유운리 선돌, 수구막이의 역할을 했던 선돌은 주북리 선돌이 대표적이다.
선돌을 선사시대의 유산으로 보기도 하지만 세워진 시기를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다. 유운리의 선돌과 같이 인근에 고인돌이 위치하기도 하고 선사시대의 유물이 주변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선사시대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주북리 선돌은 근래에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커서 이를 연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용인 지역의 선돌이 어느 시기에 만들어졌는지를 밝히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용인 지역의 대표적인 선돌>
주소지 |
위치 |
크기(길이×너비×두께) |
기능 |
원삼면 사암리 |
마을 입구 1호 |
330㎝ × 100㎝ × 35㎝ |
수호, 풍요 |
마을 입구 2호 |
220㎝ × 100㎝ × 37㎝ |
수호, 풍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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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3호 |
290㎝ × 100㎝ × 30㎝ |
수호, 풍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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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 4호 |
197㎝ × 65㎝ × 37㎝ |
풍요 |
|
도랑 옆 5호 |
150㎝ × 125㎝ × 47㎝ |
풍요 |
|
원삼면 두창리 |
마을 옆 |
194cm × 37cm×46cm~73cm |
풍요, 수호 |
남사면 창리 |
마을 건너편 |
210cm × 65cm × 30cm |
풍요 |
포곡면 유운리 |
마을 입구 |
197㎝ × 118㎝ × 58㎝ |
수호 |
마을 입구 |
179㎝ × 90㎝ × 55㎝ |
수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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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면 주북리 |
마을 안쪽 |
175㎝ × 22㎝ |
수호(수구막이) 붙어있음 |
마을 안쪽 |
150㎝ × 25㎝ |
<유운리 선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