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새벽님의 편지
아주 오랜만에 컴 앞에 앉았습니다.
컴이 고장나 답답해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아들이 노트북을 보내왔습니다.
한 동안 잃었던 힘이 돋아나는 것처럼
작은 재미가 스멀거립니다.
집 앞 거리에까지 묻어나던
하얀 아까시아 향이 지나가나 싶었는데
붉은 장미꽃이 한창입니다.
올해에는 화토장 유월 모란꽃이
피고 지는 것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무엇이
내 관심을 앗아갔는지
모란은 홀로 피었다 져갔습니다.
내 기억에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관심 만큼 보인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젊을 때는 유난히 예민한 성격이
내 장점인 줄 알고 열정으로 살았는데
세월이 쌓이며 관심의 양만큼
일상이 힘들어지는 것을 깨치게 됩니다.
눈에 좋아 보여도 가슴에 쌓이지 않는
일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노트북을 펴들고 메일을 뒤지다가
우박사의 지난 날 편지를 읽으며
몇자 적고 있습니다.
바삐 사는 것이 우리의 좋은 삶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쉬어가는 벤치도 눈에 보입니다.
몸이 지치고 힘들어 부서져도
마음을 쫒아 살았는데
이제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 하자는 데로
살아야 하는 것도 깨치고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혼자 해야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을,
흉내만 내고 살아도 부산함은 끝이 없고
가슴의 양심은 더 많은 것을 주문하기에
심신이 지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무리하지 않는 일상이길 바랍니다.
세월과 관계 없이
우리 가슴에는 동심이 살아있어야
삶의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우박사의 순수한 웃음과 몸짓
그리고 유머스런 이야기꽃이
함께 하는 이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참 좋은 우박사 님,
가슴에 오월의 붉은 장미꽃처럼
아름다운 삶의 재미가
가득하길 원합니다.
2019.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