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족, 직장

딸아 고맙다.

고인돌인 2006. 11. 6. 19:26

 

7교시가 끝나고 책상 서랍에 넣어둔 휴대전화가 울렸다. 요즈음이 수시 2학기 합격자 발표 기간이라 좀 긴장하고 있었다. 맏딸이 2학기 수시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1학기 수시 모집에서 5곳을 넣었는데 모두 낙방했고, 2학기 수시에도 여섯 군데를 넣었는데 벌써 두 군데는 낙방을 했다. 정신없이 논술과 면접을 준비하고는 시험장에 수없이 돌아다녔다.
수험생을 둔 다른 모든 부모들이 하는 거짓말처럼 마음에 드는 학교에 가지 못하면 재수를 하라며 아이를 달래기는 했지만 올해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전화를 받자 딸의 큰 울음소리가 들렸다. 직감적으로 ‘합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낙방하고는 단 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합격했다면서 왜 우느냐’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도 너무 기뻐서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화기 옆에서 청소를 하던 학생들이 상황을 파악했는지 합격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쳐주었다.
이제 나도 대학생을 둔 아버지가 되는 순간이다. 고등학교에서 수년간 진학지도를 해 보았기 때문에 서울에 소재한 대학에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저 고마운 생각만 들었다. 이제 대입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하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도 합격과 더불어 얻게 되었다.
나는 그간 아버지로서 딸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고3담임이니, 학년 부장이니, 내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아내 혼자 애태우면서 아이들 교육을 도맡아 왔다.
나는 아무 역할도 못하면서 아이들이 뭘 잘못하면 집사람 탓만 해왔다. 학생의 진로는 그저 담임선생님께 맡기고 나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들만 잘 가르치면 된다고 스스로 위로해 왔다.
그간 모든 수험생이 마찬가지였겠지만 우리 딸도 많은 고생을 했다. 중학교 때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열심히 해주었다.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때에는 좋은 머리를 물려주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자주 들었다.
중간·기말 고사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야 딸이 밤을 하얗게 새운 것을 알았고, 평소에도 날마다 딸이 잠드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내가 먼저 잠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침에는 늦잠을 잔다며 딸을 다그치기만 했다.
내 딸 아영아, 그간 고생 많이 했다. 합격해 주어서 너무너무 고맙구나. 사학과를 갔으니 아빠와 같은 길을 가게 되어서 더 좋구나. 아버지보다 훨씬 나은 역사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맏딸, 아영아! 오늘도 자율학습 감독을 하느라 일찍 퇴근은 못하지만 빨리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구나. 네가 무서워한다는 무뚝뚝한 아빠가 한마디 한다.
“아영아, 사랑한다. 아주 많이. 그리고 집에 가면 한 번 꼭 안아 줄게. 사랑하는 우리 아영아.”(11.6)


 우장문/숙지고 교사<독자 기고>

게재일 : 2006.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