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이융조교수님 내외분께
존경하는 이융조 교수님 내외분께
교수님 어저께 20여년 만에 정년기념 특강에서 교수님의 수업을 다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옛날을 회상하시면서 울먹이시던 것 이외에는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하시는 것에는 변화가 없더군요. 그리고 너무나 많은 훌륭한 분들이 교수님을 축하하기 위하여 자리를 메운 것을 보고 너무나 부럽기도 하였고, 성공적인 삶을 사신 교수님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팔순을 바라다보는 교수님의 초등학교 6학년 은사께서 ‘천재 이융조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지 보러 왔다’ 하시면서 초등학교시절부터 똑똑했고, 남달리 부지런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세 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어느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발굴장에서 자기들끼리 교수님보다 먼저 발굴장에 나가는 내기를 했는데 항상 가보면 교수님이 계셨다고요.
발굴장에서는 항상 엄하시고, 발굴이 끝나면 그 날의 발굴에 대하여 토론을 하시면서, 녹음까지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툭툭 던지시던 질문은 우리를 당황하게도 했지만,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실에 있던 저희들은 항상 11시 이후에나 학교에서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퇴근을 하시던 교수님은 다른 연구실의 불이 모두 꺼져 있는 것을 보시면서 ‘우라나라 교수들이 열심히 연구하지 않는 것 같다’고 혼잣말로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 이후 지금까지 교수님의 이 말씀을 항상 되새기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제가 나름대로 부지런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님께서 보여준 부지런한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교수님의 덕분에 저는 문학박사학위도 취득할 수 있었고, 수원시문화상과 경기도문화상도 수상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습니다. 이럴 때면 어떻게 아셨는지 교수님 내외분께서 항상 먼저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가끔 교수님 댁을 찾아뵐 때면 논문과 책을 주시면서 공부에서 손을 떼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하셨고, 이것이 저에게 큰 보약이 되었습니다. 20여 년 간 항상 받기만 하다가 ‘경기지역의 고인돌 연구’라는 책을 만들어서 교수님께 드릴 때에는 제 자신이 기특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모님은 저희 가족을 친자식 이상으로 보살펴 주셨습니다. 배고픈 충북대학 사범대 시절에는 라면과 밥 그리고 반찬까지 자취하는 우리들이 먹을 수 있도록 애를 쓰셨습니다. 제가 결핵성늑막염으로 힘들어 할 때 약국을 하시던 사모님께서는 6개월 이상을 치료약을 거의 무료로 주셨습니다. 나중에서야 이 약이 매우 비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했던 저에게는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변변한 답례도 못했습니다. 사모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집의 모든 일에 항상 따뜻한 관심에 대해 또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 아이들은 사모님표 영양제를 먹고 자란 것 잘 아시죠?
저도 어느덧 교단에 선지 23년째가 됩니다. 지금도 국사 수업에서 교수님과 함께 발굴을 했던 두루봉·수양개 구석기 유적이나, 황석리 유적에 대한 설명을 할 때에는 와치셔츠 소매를 걷으시고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시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이럴 때면 저도 교수님 못지않게 열심히 해보려고 하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구석기 연구의 최고봉으로 우뚝 서신 교수님
교수님을 존경합니다.
교수님의 제자라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교수님의 제자로써, 교수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교수님 항상 건강하세요. 그래서 제가 18년 후 정년을 할 때 저에게도 꼭 축사를 해주세요. 그 때에는 기념식장에서 그만 공부하고 여유도 즐기라는 말씀을 많은 지인들로부터 교수님께서 들으셨는데 저도 교수님께 이런 말씀을 들었으면 합니다.
교수님·사모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2006. 11. 10. 제자 우장문 드림
이융조 교수님 내외분과 제자들
김정배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