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 어머니께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오늘 아침 기온이 올들어 가장 춥다고 하더라구요. 시골은 더 춥죠?
보일러 기름 아낀다고 냉방에서 주무신 것은 아니겠죠?
엄마! 저는 아직도 어린가봐요.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거든요. 항상 많은 사랑과 보살핌을 주시던 어머니가 너무 늙으시고, 야윈 모습을 볼 때면 항상 어머니께 더 잘 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마음과 같이 못해주는 제 자신이 너무 밉기만 합니다.
엊그제가 여든 세번째 어머니의 생신이었죠. 허리가 아파서 늘어난 복대를 매고 다니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앉았다가 일어나실 때마다 양쪽 무릎 관절 수술 이후로 손을 꼭 방바닥에 대고 미시거나, 무엇인가를 의지해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늘 가슴을 저며옵니다.
엄마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대학교 졸업식 때 누가 볼까봐 가족사진을 찍으면서 어머니가 제 손을 등 뒤로 살며시 잡으셨죠. 그 때 어머니의 손길이 매우 낯설었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제 기억으로 어머니가 그 때 처음으로 제 손을 잡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도 당신의 아들로써 저를 장하게 생각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매우 좋았었습니다. 농사일을 너무 많이 하셔서 손바닥 지문이 없어졌고, 손등 도 갈라진 거친 손이었지만 너무나 따스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등을 문지르기만 하면 왜 그리 시원했는지, 모든 어머니의 손은 그렇게 거친줄만 알았었습니다.
엄마, 고등학교 때부터 제가 자취를 할 때 겨울철에는 자취집에 오셔서 맛있는 밥을 해주셨죠. 그 때 새벽에 일어나시면서 옆에 누워있는 당신보다도 훨씬 덩치가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 행복했었답니다.
제가 결핵성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을 때 슬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에미가 제대로 못 먹여 병에 걸렸다’고 자책을 하시면서 잠도 주무시지 않고 제 옆에 서 계셨죠. 그 이후로 전화를 걸때마다 ‘밥을 꼭 먹고 다녀’하시면서 굶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하시죠. 어머니~ 는 아픈 이후로 한 끼도 굶지 않고 열심히 잘 먹고 있습니다. 제 건강은 절대 걱정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집사람과 세 명의 자식을 부양해야할 가장이기도 하거든요.
엄마, 옛날 아영이를 키우느라 고향을 떠나 안양에서 조금 사셨던 것 기억하시죠? 아영이가 울면 한 밤중에도 아들, 며느리가 잠을 못자고 출근을 할까봐 바로 아영이를 저희 방에서 안고 나가셨죠. 그러던 느 날 어머니가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너무너무 아음이 아팠었습니다. 그 때 마침 형이 서울로 이사를 하시면서 시골집이 비게 되자 어머니, 아버지가 시골로 가셨는데 저는 섭섭하기보다는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보는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물론 그 일을 장모가 하시게 되었죠. 어머니의 힘든 일이 장모님께 넘어가는 것에 안도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역시 자기 부모가 최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전화 드릴 때 가끔 저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절대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너무 황송한 생각만 듭니다. 어머니가 왜 저에게 고맙다고 하시나요. 어머니는 당연히 저의 효도를 받아야 하고, 더 많은 존경과 사랑을 자식들로부터 받을 충분한 분이십니다. 그 어느 어머니보다도 어머니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에 아영이 엄마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매우 좋아합니다. 어머니같이 좋은 분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그러셨죠. 아버지가 어머니를 너무 속상하게 해서 죽으려고 했으나 네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아서 죽지 못했다고요. 저에게 어머니가 주실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이제 오래 사시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를 합치면 170살 정도 된다고 자랑을 합니다. 우리 부모 나이를 합치면 200살은 된다는 말을 할 때까지 사셔야 합니다. 10여 년 간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드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식들에 짐이 될까봐 열심히 아버지를 위하시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힘든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어머니의 소원 모두 들어줄 수 있습니다.
어제께 어머니께 경기도문화상을 받았다고 전화로 자랑을 했죠? 저도 이제 제법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자랑스런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영이 대학에 합격한 것도 어머니가 어릴 때 잘 키워주셨고, 항상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윤명이도 공부 잘하고 있고, 아란이 역시 우리에게 항상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제가 학교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을 걱정하시는데 그것은 제가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남보다 더 열심히 살려는 것에서 나온 것이기에 저는 그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제 식구들이 모두 잘 되고, 열심히 사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떠한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어머니의 크나큰 은혜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 이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엄마 제가 지난번에 꼭 한 번 전화로 ‘엄마 사랑해요’ 한 것 기억하시나요? 편지로는 훨씬 그 말을 쉽게 할 수 있어서 좋네요.
엄마,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우리 어머니 신 석 순님... 막내아들이 어머니를 매우 사랑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기름 아끼느라 보일러 트는 것 주저 마시고 많이 트세요. 어머니가 춥지 않은 것과 어머니가 건강하신 것이 저의 가장 큰 행복이니까요.
안녕히 계십시요.
2006년 12월 2일
어머니를 사랑하는 넷째아들 우장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