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낭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운학동 돌무지' | ||||||
우장문(대지중학교 수석교사·문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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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141에 위치한 운학동 돌무지는 용인시청에서 9.5㎞ 정도 거리에 있는데 자동차로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유적이다. 이 문화재를 만나기 위해서는 시청에서 출발하면 바로 좌회전한 후 42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동부사거리에서 우회전해 57번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57번 도로로 우회전하면 잠시 후 왼쪽으로 용인송담대를 만날 수 있고 이 길로 백암 방면으로 가면 된다. 이 길 오른편으로는 경안천이 흐르는데 경안천과 나란히 가다보면 운학초등학교 표지판이 보인다. 이 표지판에서 불과 몇 미터 앞으로 ‘운학 4통 외어둔마을’과 ‘운학동 돌무지’라는 안내판 등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작은 다리인 외어둔교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나있는 작은 길을 따라 1㎞가량 더 가면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보이고 그 아래에 예쁘게 자리 잡고 있는 운학동 돌무지를 만날 수 있다. 운학동 돌무지와 느티나무는 서낭당 역할을 하고 있다. 서낭당은 흔히‘성황당’이라고도 부르는데 신성시하는 나무와 돌무지가 같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돌무지는 지역 간 경계를 표시하거나 전쟁 때 돌싸움에 대비해 쌓아놓은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을을 수호하고 온갖 액운을 퇴치해 줄 수 있는 기원대상이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가족의 안전을 바라고 풍년을 비는 종교대상물로서 기능도 했다. 서낭당에 있는 돌무더기나 나무에는 금줄을 치거나, 나무에 오색 천을 매달아 특별한 표시를 해 왔다. 금줄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쳐놓았던 것과 같이 평범한 곳이 아닌 특별한 공간이라는 표시로 왼쪽으로 꼰 새끼줄을 사용했다. 천은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부모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상인 등이 소원을 빌며 묶어 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서낭당을 지날 때는 소원을 빌면서 돌을 세 개 얹고, 나쁜 혼을 떼어내기 위해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믿음까지 생겨나서 큰 나무 아래나 산 어귀에는 지금도 돌탑이 계속 쌓여가기도 한다. 서낭당은 서낭신이 평소에 머물고 있는 곳으로 생각되는 장소라는 의미와 서낭신 진체에 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표현물인데 그 형태를 다섯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첫째 신성한 나무에 돌무더기가 복합되고 이 나뭇가지에 백지나 오색 천조각이 걸려 있는 형태, 둘째 잡석만 쌓여 있는 돌무더기 형태, 셋째 신성한 나무에 백지나 오색 천조각만 걸려 있는 형태, 넷째 신성한 나무와 당집이 복합된 형태, 다섯째 선돌만 있는 형태이다. 용인시 향토유적 42호로 지정돼 보호하고 있는 운학동 돌무지는 위 다섯 가지 서낭당 형태 중 첫째에 해당한다. 이 돌무지는 운학동의 운학3통 입구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 위치한다. 평면 원형, 단면 반원형에 가까운 돌무지는 한 변의 길이가 10~40cm정도 되는 잡석들로 이뤄져 있으며 바닥이 직경 370㎝, 높이는 200㎝ 정도 크기이다. 돌무지 남쪽 가장자리에는 최근에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다. 돌무지 앞에 세워져 있는 낡은 안내판에는‘우리 마을은 예로부터 이곳의 느티나무 아래 세단을 차리고 매년 10월 제를 올리며 매우 신성시 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특히 영구차, 상여 등 부정스러운 것을 멀리하는 깨끗한 장소이므로 주차행위, 취사행위, 방뇨행위, 놀이 등을 일체 금지하오니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운학동 돌무지는 서낭당의 전형적인 형태인 돌무지와 오래된 나무가 같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구역일 뿐 아니라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위치하는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일부에서 무덤으로 보기도 했던 것은 잘못된 것이고 서낭당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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