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탑평리7층석탑은 중원탑평리7층석탑으로 불리다가 중원군이 충주시로 통합되면서 충주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보는이로 하여금 옷매무새를 고치도록 하게 만드는 위용과 모자람이 없는 조형미는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탑을 중앙탑이라고도 부른다. 그 연유는 확실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때 임금이 남쪽과 북쪽에서 사람들을 동시에 출발하게 해서 만난 곳이 이곳이라해서 중앙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점령을 했던 충주는 남한강의 상류로 한강 하류로 뻗어나가는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곳이다. 넓은 평지에 자리잡은 충주는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적합한 곳이어서 충청도라는 명칭의 충이 충주에서 나왔을 정도로 충청도지방에서 가장 큰 세력이 있었던 도시로 알려졌던 곳이다. 전략상의 요충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