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
중학교 동창회가 있어 청주에 갔다. 친구들과 앞으로의 동창회 진로 및 임원 선출을 하고 난 후 시골로 향했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뵙기 위해서이다.
올 초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향에 어머니가 홀로 계신다. 물론 가까운 거리에 둘째 형이 사시지만 한 지붕 아래에 사는 것이 아니라서 어머니는 홀로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뵙던 것을 한 달에 두 번씩은 찾아뵈어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주려고 했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물론 불은 꺼져있고, 출입문도 잠겨 있다. 미리 전화를 드리면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실 것이고, 밤참을 준비하실 것이 뻔하여 번거로움을 드리지 않기 위하여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전화로 어머니를 깨웠다. 어머니가 황급히 문을 열어주시면서 놀라셨다. 청주에 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고 말씀을 드리면서 어머니 옆에 얼른 누워 잠을 청하였다.
잠자리에 들면서 어머니께 엄마 손을 잡고 잠을 자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래!” 하시면서 두 손으로 내 손을 부여잡으셨다.
어머니는 매우 내성적인 분이시다. 어머니는 나와 함께 어디를 가실때 한 번도 내 손을 먼저 잡으신 적이 없으셨던 분이다. 관절염으로 간신히 걸으셨을 때에도 많이 걸어야 할 때에 업고 가겠노라고 하면 극구 거절하셨던 분이다. 창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가 내 손을 처음 잡은 것은 대학 졸업식 때였다. 졸업 사진을 찍을 때 옆에 계신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것도 사진 찍는 사람이 보지 않게 내 손을 뒤쪽에서 잡으셨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았을 때 눈물이 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들에 대한 대견함으로 내 손을 잡았을 것이다.
7남매가 있지만 여섯째인 나만 대학을 나왔다. 가난 탓에 대학은커녕 고등학교 졸업도 시키지 못했던 형이나 누나와는 달리 비교적 복을 많이 타고 난 여섯째가 대학을 졸업 했을 때 어머니는 아주 기쁘셨을 것이다. 그러나 표현은 한 번도 안하셨다. 나 때문에 일곱째 이자 막내인 여동생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어머니의 가슴에는 피눈물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도 내색을 하신 적이 없으시던 어머니이시다. 이러한 여러 생각을 하시면서 내 손을 잡으셨을 것이다. 그 때의 어머니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의 손을 생각하면 거친 손만 기억난다. 어릴 때 목욕탕이 없던 시절이라 겨울에는 목욕을 할 곳이 없고, 목욕을 하는 것인지도 몰라서 온 몸이 근질근질 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수세미같이 거친 손으로 내 등을 문질러주셨다. 그저 손을 펴서 문지르기만하면 너무 시원했다. 나는 모든 어머니의 손은 원래 거친 것으로 생각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손이 왜 거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러한 어머니의 손을 오늘 꼭 잡고 자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손은 너무 고와져 있었다. 고와진 어머니의 손을 잡았을 때 나는 기뻐해야 했으나 기쁘지 않았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힘이 없으셔서 손이 부드러워지신 것이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하시고 일밖에 모르시던 어머니의 손이 부드러워진 것은 어머니의 몸이 성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머니의 몸은 쇠약해진 것이다.
차라리 어머니의 손이 거칠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잠을 청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인생의 허무함,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2007년 1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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