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족, 직장

보고싶은 아버지께

고인돌인 2008. 9. 9. 20:50

아버지 어저께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도 잘 아시지요?

아버지가 송편을 가지고 오라고 하셔서 제가 간 것이잖아요. 아버지가 꿈속에서 송편을 찾지 않았다면 송편은 산소에서 절을 할 때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집사람과 아버지가 생전에 귀여워하셨던 막내딸 손을 잡고 가서 기분이 좋으셨죠? 어머니도 덩달아 옆에서 절을 하셨잖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서울 큰형 집으로 제사를 모셨기 때문에 아버지 산소에를 제대로 못가니까 아버지가 저를 부르셨다는 것을 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산소에 다녀 온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했더니 아이들이 아주 신기해하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모 방송국 프로에 내보라고 하더군요. 돌아가신지 2년이 다가오는데 그래도 가끔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시니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세 번째였던 것 아시죠?

처음 저에게 모습을 보이신 것은 관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엉엉 울고 있을 때 웃는 모습으로 저에게 그만 저리로 가라는 손짓을 하시고는 사라지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나중에 했더니 둘째 형이 섭섭해 하드라고요. 항상 아버지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둘째형에게는 아버지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에게만 보였다면서요.

두 번째 아버지의 모습은 바지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어요. 그때는 아버지가 우리 7남매 모두에게 나타나셨다면서요. 꿈속에 가족과 함께 고향을 갔을 때 아버지가 마중을 나오셨는데 바지를 입지 않은 채로였어요. 다른 형제들도 모두 비슷한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너무 힘드셔서 바지가 벗겨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버지가 창피해서 바지를 입혀달라고 우리 형제들에게 나타나신 것이잖아요. 큰형이 바지 저고리를 사다가 산소 앞에서 태우고서야 마음이 편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지난 목요일에 저에게 나타나셨죠? 무대는 역시 시골집에 제가 있는데 아버지께서 ‘송편 어디에 있니?’ 하셨어요. 꿈에서 깬 후에 아! 아버지가 송편이 드시고 싶구나 하고 생각해서 근처 떡집에서 송편을 샀어요. 집에서 만드는 것만큼 정성은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만들 수 없는 형편인 것을 아버지가 이해하실 것으로 믿고 산 것입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사서 들고 가도 좋아하셨잖아요.

편지를 쓰다 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제 지갑에 흑백으로 된 명함판 사진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네요.

언제 아버지가 보고 싶은 줄 아세요?

어머니께 전화를 드릴 때입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나면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하는 말이 자꾸 나오려 해요. 그저 ‘그래’, ‘응’, ‘끊어’라는 말씀만 하셨던 아버지이지만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핸드폰에 있는 시골 집 전화번호가 아직도 아버지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 아시죠? 아버지의 성함을 보면서 아버지를 한 번 더 떠올리고 싶어서 바꿀수가 없었어요. 어머니는 조금 섭섭하시겠지만요.

아버지 어머니가 요즈음 많이 야위셨어요. 힘도 많이 없어진 것 같고요. 이제 연세가 90을 향해서 가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머니 모습을 뵐 때면 너무 슬프기만 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달에 두 번씩은 찾아뵙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아직도 한 번밖에 찾아뵙지 못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요.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요.

이제 60여일이 지나면 저도 고3부장이라는 딱지를 떼고 어머니를 조금 더 자주 찾아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면 아버지 산소에도 더 자주 가서 아버지를 뵐 수 있을 것이고요.

아버지! 추석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큰형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면서 아버지를 뵐 수 있겠네요. 대학교 2학년인 딸과 고3인 아들도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꼭 참석시키겠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았을 때 아버지가 훨씬 더 기뻐하신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에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008년 9월 9일

우장문

<2008년 9월 11일자 중부일부에 게재>

 

'책, 가족, 직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이름이 있어 기분 좋은 책  (0) 2008.12.30
아들아 수능 시험 잘 보거라  (0) 2008.11.13
1박 2일 휴가  (0) 2008.08.02
산책  (0) 2008.06.18
2005년 9월  (0) 2008.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