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수능 시험 잘 보거라.
며칠 전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는데 같이 근무하시는 선생님이 웃으면서 무엇인가를 불쑥 내민다.
이게 뭐야? 했더니 부장님 아이 수능 시험 보잖아요?
그제야 받아 들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아 그렇구나! 우리 아들이 13일에 수능을 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명색이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부장인 나는 정작 고3인 내 아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했을 가장 소중한 내 아들인데.
사실 내 아이를 위해 한 것이라고는 거의 없다.
학교에서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집에 가면 10시 30분이나 11시 30분이다.
집에 도착하면 물론 아들은 집에 없다.
학교 자율학습을 마치면 독서실로 곧바로 갔다가 새벽 1시 30분 정도가 되어야 돌아오기 때문이다.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아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집에 들어오는 것만은 보고 자야지 하면서 몇 번은 졸면서 기다려도 보았지만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학교에서의 수업에 대한 중압감이 항상 나를 잠자리로 내몰았다.
그리고 아침에 나무토막처럼 쓰러져 있는 창백한 얼굴의 아들을 깨우고, 화장실로 향하는 아이에게 몇 시에 왔냐? 라고 미안한 마음으로 물어보는 것이 내가 했던 최고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아들보다는 오히려 3년 동안 아침 7시경부터 밤 11시까지 함께 생활했던 우리 학교의 학생들을 더 잘 알고, 더 정성을 쏟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에는 모의고사 감독을 하다가 아차 우리 아들도 오늘 시험인데... 하면서 시험 잘보라는 말도 한마디 못한 미안함으로 머리를 긁적인 적도 있다.
특히 아들이 고3인 올해는 일요일에도 학교에 출근해서 학교 아이들의 자율학습을 지켜보다보니 정작 내 아들은 어디에서무엇을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한심한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 학교의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묵묵히 생활하고 있는 자식에 대한 믿음이나, 직장에 나가랴 아이들 챙기랴 바쁘면서도 나의 빈자리를 잘 채워준 아내에 대한 믿음, 아이가 다니는 학교 및 담임선생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어 가능했다고 생각하면서 이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내가 대입고사를 치렀던 것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30년이 지났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문제가 잘 보이지도 않았던 기억과 시험 전날 주위 분들이 사다 준 엿을 신문지 위에 모아놓고 흐뭇했던 것이 눈에 선한데 벌써 둘째 놈이 그 전철을 밟게 되었다.
고3 아버지의 역할은 제대로 못했지만 학교에서 말썽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들에게 마음속으로나마 항상 고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가끔은 힘들어 지쳐있는 아내에게 청량음료 역할을 해주는 아들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아들아 그간 고생했다. 뿌린 만큼 거둔다고 하였다. 아빠는 수험생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지만 그래도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수능 시험을 보러 갈 때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네 손을 꼭 잡고 시험장에 가고 싶구나.
지금까지 너에게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구나.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무척 사랑한다.
수능 후에 우리 멋진 여행이라도 한번 가자꾸나.
2008년 11월 12일
숙지고등학교 교사 우장문
<2008.11.13. 중부일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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