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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에게

고인돌인 2019. 1. 7. 08:27

내 사랑하는 딸 00아~

우리학교 아이들이 어저께 졸업식을 했다. 00이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졸업을 한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결혼까지 했구나.

00이가 결혼 후 호주에서 사는 것이 이상하게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더라.

벌써 1년이 되었구나.

엄마가 아파서 신경도 제대로 써주지 못했고...

나도 신경을 써주지 못해서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도 많이 미안했었다.

엄마가 살아서 00이에게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써줬어야 하는데 너무 아쉬움이 크고 미안할 따름이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내 탓은 아닌가... 가끔 생각을 한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참 그런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엄마를 많이 좋아했었는데 결혼을 하면서 연인이 아니라 그냥 부인으로만 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좀 더 살갑게 대해주고, 손도 많이 잡아주고, 사랑한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정겨운 표정으로 퇴근을 맞아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들이 너무 후회스럽다.

너는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한다.

네 탓 내 탓이 아니라 모두 우리 탓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으면 한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서고, 사과하기를 바라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것도 아닌데 왜 내가 먼저 손 내밀면서 미안하다고 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배우자가 없다는 것에 힘들 때가 가끔 있다. 특히 엄마라는 자리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리라는 것을 많이 느끼면서 산다.

무거운 시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엄마가 저 힘든 일을 30년 동안 이나 하다 갔구나... 학교에서 힘들게 하는 학생들을 한 두명 보면서는 엄마는 저런 학생이 절반 정도가 있는 학급에 들어가서 힘겨운 수업만 하다가 갔구나... 그리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노년 부부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았어야하는데... 하면서 후회를 종종 한다.

얼마 전 0란이 과외하는 곳에 갔을 때 그간 씩씩한 모습만 보이던 0란이가 내 손을 잡고 가다가 갑자기 길에서 엉엉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너나 0란이나 얼마나 엄마의 빈자리를 많이 느끼고 그리워하면서 힘들어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를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0란이가 50이 넘어서까지 엄마에게 응석이라도 부리도록 했어야했데... 너무 미안하다.

0영이는 0규와 5060년이 넘어서도 행복하게 잘 살아줬으면 한다.

배우자이지만 너무 막대하면 안되고 항상 감싸주고 사랑해주고 같은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

결혼 후에 공부하고, 알바하면서 서로 바쁘게 사는 생각을 하면 많이 안타깝다. 더 행복하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서로 믿고 사랑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많이 가져라.

2019. 1. 7. 아빠가

 

네 저도 사랑해요 아빠.

미안해 하실필요 없어요 엄마가 아프셨던게 어떻게 아빠 잘못이겠어요. 그저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뿐이지요. 엄마가 편찮으실때도 정말 헌신적으로 엄마 곁에 계셔 주셨잖아요. 아빠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마셨으면 해요. 이제 엄마한테 아무것도 해드릴수 없는건 마음아프지만 0란이에 비하면 저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랑 결혼하는것도 보여드릴 수 있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서 0규랑 잘 지내고 있어요.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가 마음이 많이 허전하고 힘드실거 같아서 그게 항상 걱정이네요. 그래도 0명이랑 0란이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많이 힘드시겠지만 아빠는 강하신 분이니 잘 이겨내실 거라고 믿어요.

사랑해요 아빠

 

큰딸과 카톡으로 주고 받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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