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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린 큰 딸의 편지

고인돌인 2019. 2. 1. 01:07


잠이 오지 않아서 스마트폰을 뒤적이는데 아내가 세상을 떠난 며칠 후에 딸이 보내온 편지이다.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상을 당했는데도 결석을 이해해주지 않는 호주의 학교 사정으로 장례식이 참석을 하지 못하였다. 물론 호주에서 장례식에 맞춰서 오기도 너무 어려워서 오지 말라고도 했었다. 사위가 아침에 간신히 도착해서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딸의 아파하는 마음을 마음을 수 있었다. 딸의 글을 읽으면서 새삼 많이 컸다는 것을 느꼈고,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고, 자식들의 위로를 받을 나이이고, 조금씩 아이들에게 무엇이든 넘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버지께

 

아빠, 큰 딸 ㅇㅇ이에요.

그저 먼 일 인줄로만 알았던 일이, 먼 일이기만 바랬던 일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일어나 버렸네요.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가 멍하고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어요.

실감이 나질 않았어요. 제 삶은 그대로인데, 엄마가 세상에서 사라지셨다는 사실이요.

그 소식을 들은 날, 자려고 누웠다가 결국 한참을 목놓아 울었어요.

거칠지만 따듯했던 엄마 손의 감촉이 너무나 생각이 나서요.

떨어져 사는 저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30여 년의 세월을 옆에서 함께 살아오신 아빠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고 힘이 드실지, 엄마가 없는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막막하고 쓸쓸하게 느껴지실지, 그 생각을 하면 더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신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병을 이겨 내실 거라고 믿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엄마가 내 곁에 오래 계시지 못 할 거라는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엄마가 집에 계시던 기간 동안, 매일 엄마를 위해 삼시 세끼를 차리며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런 일이나마 엄마를 위해 해 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시기에 이걸 해 드릴 수 있는 상황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면 그래도 덜 죄송 할 것 같아서요.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한 채로 돌아 가시면 내 마음이 얼마나 한스러울까. 이런 생각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작은 일이라도 해 드렸던 것이 그나마 저에게 위로가 되네요.

 엄마랑 했던 마지막 여행이 요즘 계속 생각이 나요. 호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바다가 너무 예쁘다며 한참을 앉아 계셨던 모습, 남자친구였던 ㅇㅇ에게 나중에 ㅇㅇ이랑 어떻게 될지 모르니 꼭 독사진을 찍어 놓으라며 농담하시던 모습, 시드니 강가의 멋진 레스토랑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좋아하셨던 모습 하나하나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되었네요.

 아빠가 엄마한테 읽어 주셨다는 편지를 보면서, 그래도 엄마의 삶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는 그 편지를 들으시면서 정말 행복하셨을 거에요. 30년을 함께 한 남편에게 그렇게 진심이 담긴 절절한 사랑 고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요. 엄마에게 못 해주신 것에 대해 너무 가슴 아파 하시지 마세요. 그래도 일 년여의 투병 기간 동안 아빠는 최선을 다 하셨잖아요. 세상 어떤 사람이 봐도 아빠가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 하셨다는 것은 알 거에요. 물론 그 누구보다도 엄마가 잘 아셨을 거에요. 아빠가 얼마나 엄마를 사랑 하시는지를요. 여자들은 그 어떤 호강을 시켜 주는 것 보다,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 행복하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좋은 기억만, 좋은 추억만 간직하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럴 거구요.

 ㅇㅇ이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랑 ㅇㅇ이가 있으니까요. 제가 멀리 떨어져 있어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순 없겠지만, 이제 제가 ㅇㅇ이의 엄마 라는 마음으로 신경 많이 쓸게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형제자매가 있다는 게 참 좋은 거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어떤 사람도 가족들만큼 같은 슬픔을 나눌 순 없고, 가족들만큼 의지가 될 순 없으니까요. 제 걱정도 하지 마세요. 저는 저를 정말 아껴주고, 저를 항상 웃게 해주는 신랑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마음을 나눌 친구들도 많이 생겼구요.

 아빠,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있어 주세요. 지금은 많이 힘드시겠지만, 하루 하루 살다 보면 분명히 언젠간 또 행복한 날이 있을 거에요. 몸에 좋은 것도 많이 드시고, 친구들도 많이 만나시고, 취미생활도 하시면서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안 드리는 무뚝뚝한 딸이지만, 그래도 아빠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딸이라는 거 항상 잊지 마세요, 그리고 제 생각 나시면 언제든 전화 주세요. 아빠, 정말 많이 사랑해요.

 

2018.4.20 

큰딸 ㅇㅇ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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