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고 집에 왔는데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수원에 눈이 많이 내리는 데 괜찮냐고... 방금 지하철 역에서 집에서 오는 길에는 안왔었는데 하면서 창밖을 보니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보 운전으로 멀리 사는 아들이 걱정되어 내일 조심하라고 전화를 하고는 다시 방에 들어와서 일을 했다.
조금 지난 후 다시 밖을 보니 아파트 주차장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었다.
이제 정말 내일 출근하는 분들이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0시 쯤 되어 밖을 보니 눈이 아까보다 훨씬 많이 쌓였고, 경비아저씨들이 힘겹게 눈을 치우고 계셨다.
갑자기 눈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옷을 여러겹 껴입고 경비실 주변에서 치울만한 도구가 있나 살피다보니 삽이 보였다. 그것을 들고 우리동 쪽으로 가는데 저쪽에서 눈을 치우시던 경비아저씨가 오시더니 왜그러나고 하신다. 눈을 치우려고 한다고하니 너무 고맙다고 하시면서 눈삽을 찾아주셨다. 누가 같이 나와서 여럿이 함께 치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늦은 밤이고 내일 출근을 해야할 분들이라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바람 맞으면서 삽질을 했다. 벌써 몇 년 전인가 초저녁에 눈이 많이 왔을 때는 여러분이 나오셔서 같이 치웠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경비원도 반으로 줄인지 오래라서 치우는 것이 너무 힘들 것 같다. 지나가는 분이 수고하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현관 입구에서 분리수거를 나왔던 여학생이 눈을 뭉치면서 좋아한다. 눈이 많이 와서 너무 좋다고 한다. 옷을 경비하는 분보다 더 경비원같이 입고 있어서 마침 알아보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눈을 치우면서 내일 출근할 아들이 많이 걱정이 되었다. 차를 산지 몇 달 되지 않아서 아직 초보이고, 이런 눈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한 시간 정도를 가야하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나도 눈길에 사고가 났던 기억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옛날에 폭설이 왔을 때 11시가 되서야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간에도 선생님들이 절반도 안왔었다^^
나는 우리동 입구쪽에서 눈길을 내고 경비아저씨는 반대쪽에서 열심히 치우셨다. 그러다가 거리가 가까워지면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계속 하신다. 70이 훨씬 넘을 것 같은 연세에 많이 힘드실 것 같다. 나도 허리가 아프고 숨도차는대 어르신은 얼마나 더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스크까지 해서 앞도 안보이지만 그래도 발목까지 오는 눈밭 가운데 신발이 파묻히지 않는 길을 걸을 주민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것이 살맛나게 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얇은 장갑을 낀 손이 언다는 느낌이 점점 들어가고 마스크도 얼기 시작하면서 점점 힘듬이 더해갔다.
11시가 가까이 되어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은 거의 치운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할곳이 있나 돌아다니는 데 경비아저씨가 오셔 그만하시라고 하신다. 눈이 계속 내려서 계속해도 끝이 없다고... 잠바를 벗은 경비아저씨의 몸에서는 끓은 밥솥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듯 수증기가 온 몸에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활짝 웃으시면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들으니 나도 참 기분이 좋았다.
이제 그만 눈이 내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에 걸린 거울을 보면서 모자를 벗으니 머리가 땀에 흠씬 젖어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거울 속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얼마만에 느끼는 기쁨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와 오늘의 행복한 마음을, 내집 앞은 내가 쓸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한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면서 오늘의 일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아직도 손가락 몇 개는 얼었던 기운이 풀리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 간 오늘은 그래도 의미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며칠 간 잠이 오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잠이 잘 올것이라는 즐거운 희망을 갖을 수 있는 날이 되었다. 이런 기분... 눈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나저나 지금 영하 7도인데 빙판길에 사고나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