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족, 직장

비타500 한 병

고인돌인 2021. 4. 22. 11:09

어저께 집 근처의 편의점에 갔다.

며칠 전에 편의점에서 일회용 국, 음료 등 먹거리를 사왔다. 그런데 오랫만에 갔던 편의점에는 2+1 상품이 그전보다 훨씬 많이 보였다.

진열대에는 2+1 상품으로 일회용 미역국이으로 있어서 얼른 샀다. 딸이 매우 좋아하는 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2봉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한 봉은 며칠 후에 들어오면 가져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이 편의점은 사실 몇 년 전에 자주 들렀던 곳이다.

집 근처에 분당선 매탄권선역이 있어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편의점 앞을 지나야 집으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젊은 남자가 오더니 혹시 선생님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자 그럼 발안농고에서 근무하시지 않았느냐고 묻길래 그곳에 5년간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하는 말 '와 대박'이라고 하면서 우장문 선생님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나에게 한국사를 배웠다면서 너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 젊은이가 그 편의점 점주였던 것이다.

친구 중에 유명한 개그맨이 된 이진호가 있는데 그와 동기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나도 그 개그맨을 수업시간에 가끔 언급하기도 했었다. 어떤 분야이든 열심히 파고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스토리로...

그때는 제자 부인도 가끔 보고 인사를 하기도 했었다.

그 후 3~4년 전에 집사람이 많이 아파서 내가 병원으로 출퇴근을 했기에 자주 들르지 못했고, 그 이후 제자를 자주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궁금해서 전화를 했더니 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뒤에 다시 통화했을 때는 시험이 안되어 다른 일을 해볼까 한다는 대화를 한 뒤로는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제자가 주로 낮에 매장에 나온다고 해서 직장을 다닐 때에는 마주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가 혹시 있을까해서 들렀다가 이것 저것 사온 것이다.

먹거리와 일회용 미역국을 사서 계산을 하는데 마스크는 썼지만 박사장 부인인 것 같아서 박사장이 나오느냐고 묻자 나를 금방 알아보는 것이다.

내가 마스크도 썼지만 파마를 해서 가까운 사람들도 사실은 잘 알아보지 못했었는데~^^

제자의 근황을 물어보니 요즘 불경기라 편의점도 잘 안되어서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2+1 상품이 많다는 것이 불경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가끔 아파트 계단을 이용하다 보면 집 앞에 배달시킨 물건들이 보인다. 그 상자 안의 캔커피 1병, 과자 1봉 등 다양한 먹거리들이 담겨있는 것을 보면서 작은 가게들은 요즘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19로 사소한 것까지 배달을 시키다보니 동네의 작은 가게들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편의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요즘 편의점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손님도 그만큼 적다는 것이다.

남편이 내가 혹시 매장에 오는지... 혹시 보면 커피라도 꼭 드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제자기 있을 때 들리면 커피나 음료를 주곤 했었다. 그런데 음료수를 받은 후부터는 제자가 있는 시간에는 잘 가지 않았다. 가면 자꾸 무엇인가를 주려고해서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싶어서 가는데 제자는 물론 내가 반가워서 뭘 주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제자 부인이 잠깐만요 하면서 급히 비타500을 들고 따라나오는 것이다.

이런것 주면 못온다며 뿌리쳤지만 남편이 꼭 드려야한다고 말했었다고 하면서 한사코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받지 않으면 섭섭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있어서 할 수없이 받았다.

이야기를 잠깐 나누다가 집으로 오는데 비타500 한 병이 매우 무겁게만 느껴졌다.

1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담임도 아니고 수업만 1년 했을 뿐인데 본인은 물론 부인까지 반갑게 맞아주는 제자에게 도움을 주어야하는데 오히려 드링크제를 받아들고 나오다니... 미안하기만 했다.

앞으로는 제자 부인도 없을 시간에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즐거운 마음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왔기에 비타500을 바로 마시고 싶었지만 마실수가 없었다.

제자의 정과 땀이 듬뜩 담긴 이 비타500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억만금을 주어도 사지 못할 비타500이다.

오늘도 7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경기도 풀려서 편의점이 잘 되어 제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30대 중반이 된 제자와 학생 당시에는 깊게 이야기를 해본 사이도 아닌데 나에게 잘해주는 것은 제자의 인성이 좋기 때문이겠지... 부창부수인 부인도 마찬가지일테고...

해준 것은 없지만 따듯한 마음을 가진 제자가 있다는 것이 참 자랑스럽기만 하다.

어느 직장을 다니는 지는 잘 모르지만 직장에 잘 다니면서 행복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가족 모두가 웃음꽃이 피는 매일 매일이 되기를 빌어본다. 힘내라 재성~^^

 

사랑이 담긴 소중한 비타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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