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기록

수원의 철기시대

고인돌인 2006. 10. 20. 23:45
 

수원의 철기시대 유적

 우장문(수원 숙지고등학교 교사) 


  청동기와 철기를 병용한 시기를 초기철기시대, 철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를 후기철기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초기철기시대는 B.C. 3∼B.C. 1세기까지이며 주조(鑄造)된 철제 농기구류가 사용되었지만 무기는 여전히 청동제를 사용하였던 시대로 유적이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 시대 무덤의 형태는 돌널무덤[石棺墓]·널무덤[土壙墓]·독무덤[甕棺墓]이 주류를 이루고 청동기시대에 유행하였던 고인돌은 사라졌다. 후기철기시대에는 B.C. 108년 중국 한(漢)나라의 사군(四郡)이 설치되면서 집중적인 철기문화 유입의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부터 철기는 한국 전역에 전파되었고 중국에서도 단조(鍛造)철기의 본격적인 생산이 이루어져 철제 장도·검을 비롯한 철제 이기가 전국적으로 생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전국 각지에서 이 시대의 주거지와 분묘가 발견되고 있다. 주거유적은 주로 한강 상류지역인 중부지방에서 조사되었는데 주거형태는 움집형태이다. 무덤은 주로 대구(大邱)·김해(金海)·경주(慶州) 등 영남지방의 유적들이 집중 조사되었는데 목관을 안치한 널무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일부 목곽과 목관을 동시에 안치한 널무덤과 독무덤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철기문화가 바탕이 되어 1세기 무렵 고구려·백제·신라 등 고대국가가 성립할 수 있었다.

  우리고장 수원에서도 철기시대의 유적이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이 여기산 집자리 유적이며, 꽃뫼유적에서도 그 흔적이 보인다.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여기산 집자리 유적

  이 유적은 권선구 서둔동 산 1-1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농촌진흥청 경내의 여기산 정상부분에 해당한다. 이 유적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례의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과 집자리가 발견되었다. 특히 초기철기시대의 집자리인 4호에서는 지붕 서까래가 불에 탄 채로 무너져 숯으로 남아 있었으며 서까래의 사이사이에서는 갈대로 보이는 긴 숯이 깔려있어 마치 이엉을 엮어 덮은 오늘날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였다. 또 7호 집자리의 북쪽 벽쪽으로는 직경 37㎝ 정도의 터널이 발견되어 오늘날의 구들방의 기원이라는 면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꼽히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민무늬토기 조각, 김해식토기 조각, 철 조각, 철 화살촉, 철 도끼, 가락바퀴, 숫돌, 돌도끼 조각, 철 조각 등 다수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대다수가 초기철기시대의 유물이었다. 유물이 발굴되었던 자리는 현재 잡초가 무성하여 그 흔적을 바로 찾기조차 어렵다.


2. 꽃뫼유적1)

  이 유적은 장안구 화서2동 39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보다 정확한 위치는 화서역 옆 화산(花山)지하도를 바로 빠져나와 안산쪽으로 향하는 길 오른편의 아파트 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은 1997년 수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철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의 다양한 유구 및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발굴자는 이 곳이 소도(蘇塗)와 관련된 유적의 가능서도 개진하고 있다.

 

1) 이 유적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이곳에 인물은 꽃같이 아름답고 목소리는 은구슬같이 고우며 자태는 마치 선녀와 같고 품행이 방정한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가난한 살림살이에 병든 부친까지 모시고 살았다. 그녀의 소원은 부친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농사일을 할 수 있는 머슴을 두고 병간호에만 전념하였다. 부친은 나이가 들어가는 딸을 결혼시키려 하였으나 병이 완치되기 전에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을 시집보내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이 처녀를 흠모하던 머슴이 강제로 이 처녀를 범하게 되었다. 이 치욕을 당한 처녀는 뒷산의 나무에 목을 매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에 처녀를 묻었는데 얼마 후 그 무덤 위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 꽃이 활짝 피었다가 바람에 날려 흐트러졌다고 한다.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은 효심이 깊었던 처녀의 혼이 꽃으로 환생했을 것이라고 여기에 되었으며, 그 동산을 꽃뫼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답사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안 구암리 고인돌  (0) 2007.05.01
정읍답사  (0) 2006.11.21
수원의 구석기시대  (0) 2006.10.20
앙코르와트 2006.2  (0) 2006.09.20
캄보디아 톤레샵호수 2006.1  (0) 200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