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한국의 성곽

고인돌인 2006. 11. 3. 18:56
 

<한국의 성곽>

 

1. 성곽의 개념에 대해서


성곽(城郭)이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의 공동 목적을 갖고 거주주체의 일정한 공동활동 공간을 확보하고 그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전통 건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군사적이란 뜻은 성곽이 지역 방어 국가 방어 등 각종 군사방어 목적을 갖는 것이 으뜸이다. 한 가정의 울타리나 목장과는 다르다. 행정적이란 성곽은 군사적인 목적만이 아니라 일부는 행정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국가통치를 위해 왕이 거주하고 있는 주변과 읍치를 위해 성을 구축하는 것은 반드시 군사적인 목적으로만 축조하였다고 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이는 통치를 위한 권위적인 요소와 행정적 편의를 함께 하는 합목적적인 것으로 보인다. 집단의 공동목적이란 개인이 아닌 집단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축조하였기 때문에 개인의 사사로운 울타리 구획과는 구별된다. 거주주체에 의해서는 자연지형이 아무리 천연요새와 같다하더라고 이를 성곽이라 부르지 않듯이 반드시 사람 즉 인공에 의해 최소한 일부 축조되어야 한다. 일정한 공동활동공간을 확보하고는 성곽이란 성벽으로 거주주체인 요원의 활동을 보장하는 즉, 수용 공간을 보유하여 방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면적 즉 공간이 있어야 된다는 의미다. 성벽으로 완전히 둘리지 않아도 적에 대치할 수 있는 일정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구조물이 연결성을 갖는 것은 돌무더기, 흙무덤, 개인 분묘 등 이 성곽이 아니듯 부분적으로는 자연지세를 그대로 이용하더라도 일정공간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조성하든가 인공 구조물을 쌓아 상호 연결시켜 방어력을 제공하는 구조물이어야 한다.전통 건조물이란 종전까지는 성곽이당시에 필요한 군사방어 시설물을 성곽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과거 즉 조선말까지 그 기능이 살아있었던 당시까지 축조된 성곽을 말하게 됨으로 전통 건조물이라고 불려져야 될 것으로 보인다.


2. 성곽의 기원


한국 사적(史蹟)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성 또는 성지(城址)이다. 이처럼 많은 성이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 그 연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BC 194년에 위만(衛滿)이 왕검성(王儉城)에 도읍을 정하고 위만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기록이 있고,BC 18년에는 백제의 온조왕(溫祚王)이 위례성(慰禮城)에서 즉위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성은 오래 전부터 한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그 성이 어떠한 형태의 성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백제 초기에 축성된 풍납토성(風納土城:서울 강동구 풍납동)과 132년(개루왕 5)에 축성된 북한산성은 지금도 사적으로 남아 있어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그 후 삼국시대를 통하여 나라마다 많은 성을 축조하였고, 그 중에서 신라의 삼년산성(三年山城)과 월성(月城)은 유명하다.

한국의 축성술은 이 무렵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한국의 지형과 환경에 적응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성을 종류에 따라 구분하면 도성 ·읍성 ·산성 ·행성(行城:長城) 기타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산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점이 일본에 거성이 많은 점과 매우 대조적이다. 토성과 석성은 우리나라 성곽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있다.

석재의 운반이 어려운 지형에서는 토성이 축조되었다.석성은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성곽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왔다. 석성은 초축 당시부터 석성인 경우도 있으나 처음에는 토성이었던 것을 석성으로 개축하기도 했다. (남한산성, 공산성) 대개 석성은 토성이나 목책성보다 후대에 많이 조성되었고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대부분 석성으로 개축되거나 처음부터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3. 성곽의 발달


삼국의 성곽 시설로는 대부분 간단한 목책(木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본격적인 석축에 의한 성곽은 삼국이 고대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3세기 이후에 가능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목책의 시설물로부터 시작하여 차츰 토성으로 발전해 갔으며 그 다음 단계에는 많은 인력과 경비가 소요되는 석성을 쌓았다.

목책은 나무 기둥을 엮어 세워 적이 넘어오지 못하게 만든 원시적인 울타리 흙을 다져 넣어가며 쌓는 판축식(板築式)과 토성이 축조될 곳의 좌우 흙을 파내 둔덕을 쌓아 올리는 삭토법(削土法)이 있는데 판축식은 주로 평양에서, 삭토식은 산등성이에서 사용되었다.

목책성이나 토성, 석성 등은 그 출현시기가 각기 다르지만 삼국시대,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기능에 따라 혼재(混在)해 왔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벽돌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나 정조(正祖)때 수원성 축성에서 부분적으로 채택되었을 뿐 우리나라의 성곽은 석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4. 성곽의 축성요소


성곽의 축성 목적에 따라 정문, 간문(間門), 암문(暗門) 등이 있다. 성문의 수는 성곽의 규모 축성 목적 지형 등 제반 여건에 따라 정해졌다. 기분적으로 4개를 두었는데 방향도 동서남북으로 하여 가능하면 간격도 일정하게 하여 출입의 불편을 줄이고자 하였다.


1) 성문의 종류

성문의 구분은 축성재료 구성형태 사용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될 수 있으나 여기에서 토성과 석성의 문에 대해서 알아본다.


토성문

토성문의 형식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조사된 결과에 의해 세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 첫째 형식은 토성벽의 일부를 이용한 성문의 형태로 문의 양편에 토단을 두어 일반 성벽보다 높게 쌓아 성문을 보강한 형태이다.

㉯ 둘째 형식은 토성벽을 성문 부분의 개구부가 외부에 노출 되지 않도록 중첩되게 하여 토루가 축성의 역을 하게 하여 성문을 보호하는 형태이다.

㉰ 셋째 형식은 성벽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으로 축조한 형태이다.


석성문

현존하는 성문은 대게 석성의 성문으로 매우 다양하다. 성문의 축조 재료는 석재를 비롯하여 철재 목재 기와등 매우 다양하다. 삼국시대의 성문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나 고분 벽화에서 보이는 성곽도에서 살펴보면 당시 중층(重層)의 누각과 그 좌우에 단층 누각을 보여주고 있어 상당히 발달된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성문의 규모가 큰 도성들은 성문의 설치 4방향 외에도 중간 중간에 작은 문을 내었고 읍성의 경우 기본적으로 4방향에 성문을 두었다. 산성의 경우는 지형의 여건에 따라 성문을 두었는데 기분은 동서 남북의 각 방향에 1개소씩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방어에 취약할 수 가 있어 불필요한 곳에는 내지 않았다.


5. 성문의 형식


1) 개거식(開据式)

성문의 개구부 상부가 개방된 형태로 성문의 개구부 폭, 높이 등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토성문은 개거식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석성의 경우는 단순한 개거식에서 누문을 둔 경우도 있다. 개거식 또는 개방문이라고도 한다.

2) 평거식(平据式)

성문의 양쪽 벽석으 쌓고 그 위에 장대석이나 판석을 걸쳐 네모진 모양의 개거부를 내 형태이다. 성문의 개구부의 크기가 작은 곳에 많이 이용된 형식이다.

3) 홍예식(紅霓式)

개구부의 윗 부분을 둥글게 틀어 홍예(무지개) 모양으로 한 형식이다.

4) 현문식(懸門式)

성문의 개구부가 설치된 위치가 일반 성문의 출입구와는 달리 성벽의 일정 높이에서부터 시작되는 형식으로 일면 다락문 형식이라고 한다.

5) 문루(門褸)

성문 위에 누각이 설치된 구조물을 문루라 하는데 외관을 돋구고 위엄을 갖는 의미가 있다. 또한 문루는 유사시 장수의 지휘소가 되며 적을 조기에 발견하고자 감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초루(礁褸)라고도 한다.

6) 암문(暗門)

노출을 꺼리는 출입문 위에 문루를 세우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할 수 있는 작은 문이다. 성내에 필요한 병기 및 식량 등을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극비리에 구원을 요청할 수 있고 적을 엄습 할 수도 있는 통로로도 사용된 문이다. 암문의 형식은 횽예형식을 한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평거 형식을 한 것이 많다.

7) 수문(水門)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석이다.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 수문이라 하고 규모가 작은 것은 수구(水口)라고 한다. 암문처럼 작고 눈에 띄지 않도록 설치하였다.


6. 성문 보호 시설


1) 옹성(甕城)

모양이 반으로 쪼갠 독과 같아서 옹성이라 한다. 옹성은 성문을 밖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와부에 설치한 이중 성벽을 말한다. 적이 성문에 접근하여 성문을 뚫으려 할 때 문루와 성성에서 사방으로 협공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송성은 평면이 사각형과 반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사각형 옹성이 시대가 앞선 것으로, 삼국시대의 성에서만 볼 수있다. 옹성의 개구부가 좌우 어느 한쪽에있는 것을 편문형(片門形)이라 하고 개구부가 중앙에 있는 것을 중앙식이라고 한다.

2) 적대(敵臺)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치(雉: 성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성벽)를 말하는데, 성체(城體 성곽의 부속시설을 제외한 성벽의 몸체 부분)의 치와 구분해서 이르는 말이다. 이는 성문을 보호하기위해 성문 주변 가까운 측면에 공격할 수 있게 만든 방어 시설물의 하나이다.

3) 성벽(城壁)

① 성체

성벽에서 가장 근본을 이루는 성곽의 몸통 부분에 해당되고 보통 성곽의 높이는 성체의 높이를 말한다. 성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체 위나 주변에 부대 시설을 설치하며 방어에 대비하였다. 부대 시설에는 여장(女墻), 미석(眉石), 총안(銃眼), 치(雉), 각루(角樓), 공심돈(空心墩), 용도(用道), 해자(垓字) 등이 있다.

② 여장

성체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낮게 쌓은 담장으 여장이라고 한다. 여장의 시작은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삼국 초기부터 여장이 활용되었다고 한다.

4) 여장의 형식

일반적인 여장에는 타(화살을 막기 위한 성체 위의 구조물)와 타구(성벽위의 여장 구간마다 잘리 부분 구간의 움푹한 구간)가 있고 타에는 총안(여장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총이나 활을 소개 되어있는 구멍)을 둔 경우로, 평여장 볼록 여장, 반원형 여장 등이 있다.

① 평여장 : 대표적인 여장의 형태이다. 타와 타사이에 타구를 설치하고 크기가 일정한 장방형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타에는 총안을 3개소 둔 형태가 일반적이다.

② 볼록 여장 : 평여장이 변형된 형식의 여장으로 평여장의 형대에서 타구를 두단접어 만든 형태이다. 타의 모양이 자연형이 되고 타구는 형으로 되어 원근의 적을 일시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여장이다.

③ 반원형 여장 : 반원형의 타를 연속으로 붙여놓은 형태와 단독으로 한 개만 설치한 형태가 있는데 타의 중심에 원총안 1개소, 좌우에 통안 2개소를 설치하였다.

5) 여장의 구조

여장은 바깥쪽에서 보면 성벽의 연장으로 성벽을 높게 쌓은 역할을 하고 안쪽에서는 적으로부터 은폐된 활동 공간을 제공한다. 여장은 적의 공격에 대한 방어 기능을 제공하는 동시에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근(近), 원(遠)총안, 타구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① 미석(眉石)

성체와 여장사이에 납작한 돌로 튀어나오게 설치한 시설로 마치 눈썹처럼 보여 미석이라 한다. 모든 성곽에 미석을 설치한 것은 아니고 성체 위에 미석을 쌓은 예도 있다.

② 총안

성벽 위에서 적으로부터 노출되지않고 적에게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여장에 나있는 구멍을 말한다. 여장에는 원거리를 관측하고 사격할 수 있는 원총안이 있고 성벽에 바짝 접근한 적을 공격하기 윈한 근총안이 있는데 근총안은 급경사(30~60도) 지게 뚫었다. 원총안은 수평으로 뚫려있다.

③ 현안(懸眼)

성벽의 바깥쪽 면은 수직에 가깝게 뚫어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이다. 적이 완전히 밀착하면 성 위에서 발견하여 물리치기가 어려워14세기 말경에 창안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④ 치

성벽에서 적이 접근을 빨리 관측하고 전투시 성벽에 접근한 적을 정면 또는 측면에서 격퇴시킬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장방형으로 내쌓은 구조물이다. 치의 형태는 장방형이 많고 반원형의 형태도 있다. 산성의 경우 성벽과 능선이 교차되는 높은 지점에 치를 만들고 평지성의 경우에는 산성보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치를 설치하였다. 치의 높이는 성체의 높이와 같이 하고 규모는 일정치 않으나 일반적으로 세로로5~8m, 세로로 4~6m의 크기가 많다.

⑤ 각루

성곽에서 성벽에 부착된 치의 일종으로 모서리 부분에 설치한 것을 각루라 한다. 네무난 성에서는 모퉁이에 설치하였고 산성 등 자연지세를 이용한 경우에는 지형상 돌출되어 관측과 지휘에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⑥ 공심돈

성벽에 설치한 돈대(墩臺 : 성안 높직한 평지에 높게 축조한 포대)의 하나로 각루, 포루(성벽위에 지은 집)가 위치한 곳과 같은 치의 자리에 높다랗게 설치한 시설물인데 내부가 비어 있어 공심돈이라 한다. 원형과 방형이 있다.

⑦ 용도

성벽의 일부를 지형에 따라 좁게 성밖으로 길게 내뻗게 하여 양쪽에 여장을 쌓은 성도를 말한다. 용도는 본 성벽과 같은 구조로 설치하였는데 외성 또는 치성(성벽의 바깥으로 사각형으로 덧붙여서 만든 성벽)에 통하는 좁은 길이다.

⑧ 해자

성벽의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으파서 고랑을 내거나 하천 등의 장애무으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성곽시설의 하나이다. 해자는적의 기동에 장애를 주는 하천, 바다 등을 이용한 자연 해자와, 인공적으로 호를 파거나 고랑을 낸 인공 해자로 구분할 수 있다.


7. 성곽의 구성요소


성곽은 성문, 성벽, 성내 시설로구성되어있다.

① 성문

성의 내외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유사시에 적의 공격을 막고 전세가 유리해 지면 적을 역습하거나 격퇴하기 위하여 적절한 위치에 만들어 놓은 출입용 구조물이다.

성문은 토성문과 석성문으로 종류가 구분되는데 토성문은 토성벽의 일부를 이용해서 양편에 토단을만든 방식과 개구부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서 문을 중첩시켜논 방식,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됬던 방식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석성문은 현존하는 성문의 대부분이며 매우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성문의 형식을 보면, 성문의 개구부의 형식중에는 성문의 개구부 상부가 개방된 형태로 개구부의 폭,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이 가능한 개거식, 양쪽 성벽위에 긴 장대석이나 판석을 걸쳐 개구부 형성해서 개구부의 크기가 작은 곳에 많이 이용되는 평거식, 개구부의 상부를 홍예(무지개)를 틀어 곡선으로 형성한 것인 홍예식, 성문의 개구부가 일정 높이에서부터 시작되며 일명 다락문 형성하는 현문식이 있다. 그리고 문비라는 개구부에 다는 문짝을 목제 판문으로 제작하여 외면에 철엽을 씌우고 성문은 안쪽으로 잠그게 했다. 그외에도 성문 위에 누각이 설치된 구조물로 외관상 위엄을 갖게 하고 유사시에 장수의 지휘처로 활용되는 문루,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비상출입을 위한 규모가 적은 문을 성벽의 일부를 이용해서 설치한 암문, 성곽의 배수를 위한 시설인 수문이 있다.

그리고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인 옹성과 적대가 있는데 옹성은 성문을 밖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의 외부에 설치한 이중성벽으로 사각형 옹성, 반원형 옹성, 특수형 옹성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적대는 성문 가까이의 성벽을 돌출시켜 좌우에 설치한 치를 말하는 것으로 성체의 치와는 구분된다.

② 성벽

성곽의 부속시설을 제외한 몸체부분 즉 성벽을 일컫는 성곽구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인 성체, 성체 위에서 적의 공격으로부터 은신할 수 있는 방패의 역할을 하면서 활이나 총을 쏘기 위해 구멍이나 사이를 띄어서 쌓은 작은 성벽으로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져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여장<사진9>이 있는데 여장의 형태는 삼각형, 사각형, 반원형, 볼록형, 사다리형 등으로 다양하며 여장의 중간에 총안까지 갖추었다. 또 성체 위에 여장을 쌓기 위하여 성체의 가장 윗단을 마감하여 여장축조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체성과 여장 사이에 놓여 있는 눈썹처럼 보이는 납작한 돌인 미석, 적에게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도록 여장에 나있는 구멍인 총구, 성벽의 바깥쪽면을 수직에 가깝게 뚫어 성벽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하기 위한 시설인 현안, 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측하고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정면 또는 측면에서 격퇴시킬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장방형으로 내쌓는 구조물인 치, 성곽에서 성벽에 부착된 치의 일종으로 모서리 부분에 설치한 것인 각루, 성벽에 설치한 돈대(성안 높직한 평지에 높게 축조한 포대)의 하나로 내부가 비어 있는 공심돈, 성벽의 일부를 지형에 따라 좁게 성밖으로 길게 내뻗게하여 양쪽에 여장을 쌓는 성도인 용도. 성벽의 주변에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고랑을 내거나 하천 등의 장애물을 이용하여 성의 방어력을 증진시키는 성곽시설의 하나인 해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③ 성내시설

도성과 읍성의 경우가 산성에 비해 성 내부시설이 다양하고 군사적 목적을 지닌 성곽에는 장대(전투시군사의 지휘에 용이한 지점에 축조한 장수의 지휘소)가 있어야 한다.        


8. 성곽의 축조방법

 

성곽의 축조방법은 위치하는 지형과 축성 재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러 방법이 사용되었다. 보편적으로 토성, 석성, 토성혼축성 등의 축조방법을 알 수 있다.

① 토성의 축조방법

토성축조에는 삭토법, 판축법,성토법, 보축법 등이 이용되었다. 삭토법은 지세를 이용해서 지형의 안팎을 적절히 깎아 안팎에 황을 만들고 급경사의 성벽을 조성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판축법은 정성을 들여 성벽을 토축하는 방법으로 흙을 단순히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두께씩 흙을 펴서 다진 다음 다시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단단하다. 그리고 성토법은 주변의 흙을 이용하여 일정한 높이까지 쌓아 올리고 마감높이에서 두들겨 일정한 성벽형태를 조성하는 방법으로 가장 일반적인 토성의 축조방식이다. 그리고 보축법은 자연 지세가 자체가 방어력을 조성할 수 없는 곳에 성벽이 연결될 수 있도록 기존지형사이를 보충해 주는 방법이다.

② 석성의 축조방법

성돌은 초기에는 자연석에 가까운 할석을 이용하다가 도성이나 읍성에서는 점차 장방형이나 정방형의 마름돌을 이용하거나 다듬어서 사용했다. 성벽을 쌓는 방법으로는 양벽을 돌로 쌓는 협축법과 외벽만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채우는 편축법이 있는데 편축방법은 내탁(내부에 흙과 잡석을 채우는 것)이 루리나라 석성의 대부분에서 이용된다. 그리고 협축방법은 평지나 성문 좌우의 중요한 지점에 많이 사용되었다.

성벽의 경사의 형태에 따라 직선형성벽과 곡선형 성벽으로 구분되는데 직선형 성벽은 성벽을 일정한 경사비율에 따라 성벽 하단에서부터 상단에 이르기까지 같은 경사로 쌓아 올린 단경사, 성벽의 하단은 완경사로 윗부분은 급경사로하여 성벽의 경사율차이를 나게 하는 복경사, 성벽의 기초지반이 약하거나 성벽을 높이 쌓을 때 단을 두어 성벽을 쌓는 유단경사의 방법들이 있다. 그리고곡선형 성벽에는 성곽의 성벽이 안쪽으로 휘어진 형태로 경사율이 일정하지 않고 차츰 변하는 홀과 같은 형태의 홀형과 화살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궁형인 성벽이 있다.

③ 토성혼축성의 축조방법

성벽의 단면을 통해 일정한 석축을하고 외부에 흙을 쌓는 방법과 흙과 돌을 적절히 혼합하여 축조해서 일반 토축 성벽보다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 그리고 토성벽 한 부분에 석렬을 두는 방법 등이 있다.


9. 성곽의 종류


① 도성

도성은 왕궁이 있는 도읍지에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곽으로 고조선시대에 평양성이 존재가 문헌에 전해지고 있으며 삼국시대에도 도성을 쌓았다. 평원왕 28년(586)에 축조된 장안성은 고구려 후기의 대표적인 도성으로 수나라의 도성제도를 참고하여 쌓은 것으로 성 안 평지에 바둑판 모양의 시가지를 만들어 규칙적으로 이방(里坊)을 배치하였다.

바둑판 모양의 가로에는 큰 냇돌을 깔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장안성은 현대적인 도시계획의 방식을 보여 주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② 산성

우리나라 성곽의 대표적인 형태는 산성이다. 산의 자연적인 지세를 최대한 활용하여 능선을 따라 용이 산허리를 감듯 꾸불꾸불 기어 올라가는 산성은 자연에 순응하고 동화하려고 했던 우리 선인들의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성은 평양를 앞에 둔 산에 자리잡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들판을 건너오는 적을 빨리 발견하여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평지와는 동떨어진 깊은 산 속에 산성을 쌓기도 하였다. 이 경우에는 천험을 이용하여 지구전을 펴려는 생각에서였다. 칠곡의 가산성, 문경의 조령관문, 북한산성, 창렬의 화왕산성이 여기에 속한다.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 동래의 금정산성, 상주의 백화산성 등은 규모가 큰 산성들이다. 이 가운데 금정산성은 둘레가 17KM나 되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이다.

③ 읍성

읍성은 지방 행정 관서가 있는 고을에 축성되며, 성 안에 관아와 민가를 함께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읍성은 행정적인 기능과 군사적인 기능을 아울러 갖는 특이한 형태이다. 읍성은 평지에만 쌓는 일은 드물고 대개 배후에 산등성이를 포용하여 평지와 산기슭을 함께 감싸면서 돌아가도록 축조되었다. 읍성의 형태는 타원 또는 원형을 이루며 돌이나 흙으로 쌓았다. 평상시에는 방어 기능의 성곽이 되어 성문을 굳게 닫고, 군,관,민이 한 덩어리가 되어 성을 지킨다. 이러한 읍성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존재로서 고려말에 처음 등장하여 조선 초기에 크게 유행하였다. 승주군의 낙안읍성과 홍성의 해미읍성 등은 평지에 축조된 대표적인 읍성이다.

④ 장성

국경의 변방에 외적을 막기 위해서 쌓은 것이 장성(長城)인데 행성(行星) 또는 관성(關城)으로도 부른다. 장성은 이름 그래로 길이가 수십킬로미터나 되는 큰 규모의 성으로 산과 산을 연결하여 축조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나라 장성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유명한 것은 고려때 쌓은 천리장성이다. 12년에 걸쳐 완성된 성벽의 높이와 너비가 각 25척이나 되었다.

⑤ 궁성

봉건사회에서 절대관자인 왕이 거처하며 통치하는 곳에는 궁궐을 짓고 필요한 관청건물이 축조된다. 이를 중심으로 성벽이나 담장으로 둘러싸는데 이를 통틀어 궁성이라 한다. 도성내에는 왕이 있는 궁궐을 비롯하여 백성들과 행정관청을 두루 갖는 지역을 말하는데 도성내의 도성을 궁성이라 할 수 있다. 궁성은 도성이 축조되지 않는 곳에도 있을 수 있어 반드시 도성이 축조된 내에만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궁성은 여러 명칭으로 사용되었는데 왕이 거처한다 하여 왕성이라 하기도 하고 황제인 경우는 황성이라고 불리웠다.

고구려(평양의 안학궁성), 백제(부소산성내의 왕궁지), 신라(금성내의 월성), 고려(만월대 궁지), 조선(경복궁) 등이 있다.


10. 한국 성곽의 특징


우리나라는 성이 발전한 중국과 다른 특성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형태, 기술, 위치, 구조의 네 가지 방향에서 살펴 볼 수있다.

① 형태

우리나라의 성곽은 방형을 띤 중국이나 별 모양의 중세 서양의 성과 같이 어떤 일정한 형태를 갖고있지 않다. 그냥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복잡한 모양이 주류를 이루고 이런 이유로 산성이 많이 축조되었다. 축성재료 또한 산돌을 이용하거나 돌이 없는 산은 삭토법으로 성벽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전시에 산성에 들어가 지키는 전통적인 전술로 따로 부대 시설을 갖추지 않고 지형을 이용한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옹성, 치성, 망루 등의 시설을 따로 축조한 필요가 없어 성의 축조비용이 절감되었다.

② 기술

산지를 그대로 이용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재료 또한 산돌이 대부분이고, 이런 산돌을 포함하여 돌을 많이 이용하였다. 중국과 비교해 보면 중국은 판죽의 토성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성은 내족의 석성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축성 기술은 자연 할석의 평평한 한쪽면을 성벽의 바깥부분에 맞대어 쌓고 그 안쪽에 석재를 뗄 때의 부스러기를 넣으며, 다시 그 안쪽에 흙과 잡석을 채우는 내탁의 방법이다. 그리고 산성을 축조할 때 자연적인 경사면을 더욱 경사지게 하여 성벽으로 이용하는 삭토법이 발전하였다.

③ 위치

평지성은 물을 이용하여 자연을 이용한 방어선을 만들고 뒤는 험준한 산에 의지하였고, 산성에서는 넘겨다 보는산을 피하여 위로부터 공격을 못하도록 위치선정을 하고 있다. 이러한 위치 선정은 사람의 힘을 가장 덜 들이고 적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형의 유리함을 활용하였다는 특징을 보인다.

④ 구조적 특징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성은 부대시설의 배치에 있어서 산의 능선을 많이 활용하여 축조하였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문과 성문을 계곡의 중앙과 그 좌우에 설치하여 통행을 편리하게 하였으며, s자형으로 굽이 드나들도록 하고 있다. 암문은 산등성이로 통하는 능선부의 바로 아래 비탈진 부분을 이용하여 설치되었다. 치성은 산성의 경우 대체로 평탄한 지형에 성벽이 곧게 뻗은 곳에서 산등성이 쪽에 배치되었고 대부분 곡성을 이룬다. 옹성은 가파른 계곡 경사면이 경우 대부분 곡성으로 대치된다. 성내의 가장 낮은 부분에 연못이나 샘이 있으며, 대부분의 연못은 방형 또는 원형으로 단을 두고 깊게 축조하여 가뭄에도 마르지 않도록 하였다. 여장은 평사 보다는 내려다 고 쏘아야 하기 때문에 그리 높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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