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국사 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우 장 문(수원 숙지고등학교 교사)
얼마 전 딸에게 화를 낸 일이 있었다. 고 3인 딸이 대학 입학을 위한 수시 2학기 논술 및 면접 준비를 해야 하는데 예상 문제를 좀 뽑아달라고 한다. 아빠를 뒤이어 역사를 전공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동북공정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동북공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대학을 지원한 딸이 너무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너는 그것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공연히 딸이 다니는 학교의 국사 선생님을 원망했다. 왜 그것도 모르냐고 처음에는 크게 다그쳤지만 우리 역사 교육의 현실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국사나 한국근·현대사 시간에 분명 언급을 했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념조차 알지 못하게 된 것이리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기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국사는 고 1에서만 배운다. 딸은 고 3인데 수능에서 선택하여 시험을 보지 않으면 당연히 국사 공부는 하지 않는다. 꽉 짜여진 학교 일정에서 2·3학년 때 국사에 관심을 가질 틈은 없다. 딸은 국사가 어렵다면서 그나마 선택도 하지 않았다. 2학년이나 3학년 때 심화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도 너무 어려워서 점수를 따기가 어렵다면서 역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역사 교사인 내가 생각해도 내용이 훨씬 적고 쉬워서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않아도 쉽게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과목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것들이 우리나라 국사 교육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의 국사 수업은 현 7차 교육과정(중학교는 2001년, 고등학교는 2002년)부터 국사 수업시간은 주당 3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다. 그나마 국사 수업도 고 1이면 끝난다. 고 2부터는 11개 사회과 선택과목 중 한국근·현대사나 세계사를 선택한 학생들만 역사 수업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도 인문계 학생들에게만 한정하여 배운다.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자연계 학생들에게는 국사를 선택하여 시험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국사와 한국근·현대사의 분리는 우리 국사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1학년 국사 시간에는 근·현대사를 배우지 않는다. 실업계 학생이나 자연계열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에 근·현대사를 배울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이는 큰 문제이다. 역사는 연속성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예견하고 개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국사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11개 사회교과 중 하나의 선택과목에 불과하다. 그나마 국사는 소위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서울대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어서 서울대학교 인문과 쪽에 응시하는 학생은 모두 국사를 선택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잘 된 것 같지만 속사정은 그렇지만은 않다.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국사를 서울대에 응시하지 않는다거나 성적이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점수(표준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국사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일선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서울대 학생들의 들러리를 서지 말고 점수 따기 쉬운 다른 과목을 선택하라는 권고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지난 6월에 치러진 2007학년도 대학입학수능 모의평가에서 사회탐구 응시자 30만 여 명 중 국사를 선택한 학생은 6만 여명으로 20% 정도에 불과했다. 국사에 관한 관심이 갈수록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고 1에서 근·현대사를 제외한 근세(조선 전기)까지의 교육으로 끝나는 것이다. 물론 대학에서 선택 과목으로 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취직에 목마른 대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질 겨를은 현실적으로 없다. 취업 시험에 국사는 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가장 책임이 있는 것은 교육부이겠지만 역사 교사에게도 책임이 많다고 본다. 물론 역사 교사는 변명을 할 여지가 있다. 우선 교과서의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혹자는 요약해서 가르치고 학생 스스로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하면 진도에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학생 스스로 학습을 하게 할 경우 과연 몇 명이나 국사 과목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할지 의문이다. 방과 후 가정에서는 입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위 주요과목에 매달릴 시간조차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국사 선생님들을 만나면 모두 수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대학입학수능시험에서 들러리 과목으로 밀려나 학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학습해야 할 분량이 너무 많은 것이다. 주당 2시간을 1년 동안 학습했을 경우 서둘러서 진도를 나가도 마지막 단원인 문화 단원은 학습할 수가 없다. 사실 문화 단원은 정치·경제·사회 단원보다도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는 보충수업시간에 부득이 진도를 나가는 경우도 있다. 진도를 나가기가 바쁜데 학생들에게 무슨 역사의식이나 애국심이나 문제의식을 불어넣어줄 수 있겠는가.
언론에서 역사왜곡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없어졌던 국가고시에 국사 시험을 다시 필수로 해야 한다느니, 대학입학수능시험에서 필수과목으로 해야 한다하기도 하고, 국사의 수업 시수를 늘여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다른 과목과의 형평성에 부딪쳐서 다음에 다음에로 항상 밀리고 만다.
역사는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과목이야 없지만은 역사 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과목으로 생각한다. 제3공화국 시절에 국사를 강조했던 시절로 가자고는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등학교 국사를 수업 시간에 정상적으로 마칠 수 있는 시수는 확보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 6월에 중국의 집안에 갔었다. 집안 박물관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 ‘고구려는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글귀가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로 둔갑해가고 있는 것이다. 없는 역사도 만들어서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중국이 우리 역사를 집어 삼키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있는 우리 역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고 관심은 멀어져만 간다.
물질적으로 부서진 것은 다시 복원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무너진 것은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국가와 민족의 정신은 역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를 지키고 유지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 모두가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최 일선에서 가장 반성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할 사람들은 역사 교사이다.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초·중·고의 국사 교육에 더욱 많은 관심, 투자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