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

바위그림

고인돌인 2006. 11. 3. 19:05
 


바위그림(岩刻畵, rock art)


  암각화․암화․암벽각화․암벽화라고도 한다. 구석기시대부터 그려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고 청동기시대에 와서 가장 많은 제작이 이루어졌다.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제작기법은 동물․식물․광물성 물감으로 칠하거나 뿌려서 그리기도 하고, 돌이나 금속으로 쪼기, 갈기, 그어 파내기 등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물감으로 그린 것은 한국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중국․몽골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멕시코 인디언 등은 지금까지도 물감으로 바위그림을 그리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주로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주로 수렵인․어로인․유목민 등이 제작한 것으로, 그림의 소재도 수렵․어로․목축이 많고 때로는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문자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바위그림은 울산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울주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고령양전동암각화(보물 제605호) 등이다. 울산 반구대암각화에는 여러 가지 동물과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고 울주 천전리와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는 추상적인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도 영일 칠포리, 경주 석장동 금장대, 남원봉황대 등과 같이 산과 물, 옛 무덤과 어우러진 바위그림이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 高靈良田洞岩刻畵

  보물 제605호. 1976년 지정. 높이 3m, 너비 5.5m의 직사각형 암벽에 새긴 그림으로, 1971년 알터[卵峴]에서 발견되었다. 그림은 동심원(同心圓)이 3개, 十자형이 1개, 가면모습의 목책형(木柵形) 2~3개가 대체로 좌 ․중 ․우의 3군(群)으로 나누어 추상양식으로 음각(陰刻)되어 있다. 이 중 목책형 방형(方形)무늬는 가면 같기도 하나 목책(木柵)에 둘러싸인 특별 성역(聖域)을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곳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원시신앙 유적지로 추정된다. 또한 ꡐ알터ꡑ에 이 바위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 구간(九干)이 귀지봉(龜旨峯:김해 소재)에서 노래를 부르자, 6개의 알이 든 금궤가 하늘에서 내려와 뒤에 옥동자가 탄생, 가야국을 다스렸다는 건국설화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난생설화(卵生說話)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고, 6가야의 중심지가 김해가 아니라 고령으로 추측하게도 한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蔚山盤龜臺岩刻畵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 상류 반구대 일대의 인공호(人工湖) 서쪽 기슭에 북쪽으로 향한 암벽에 새겨졌다. 댐의 축조로 인해 평상시에는 수면 밑에 있다가 물이 마르면 그 모습을 보인다. 그 크기는 가로 약 8m, 세로 약 2m이고, 조각은 암벽 밑에까지 부분적으로 퍼지고 있어 밑에서부터 암각화 상단선까지의 높이는 3.7m쯤 된다.

  반반하고 매끈거리는 병풍 같은 바위면에 고래 ․개 ․늑대 ․호랑이 ․사슴 ․멧돼지 ․곰 ․토끼 ․여우 ․거북 ․물고기 ․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을 쪼아서 표현하였다. 여기에 표현된 동물들이 주로 사냥 대상 동물이고 또 이들 동물 중에는 교미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과 배가 불룩하여 새끼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동물의 모습이 보인다. 이 암각화는 당시 사람들이, 동물들이 많이 번식하고 그로 인해 사냥거리가 많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춤추는 남자의 모습에서 성기가 과장되게 표현된 것은 인간의 생식능력이 자연의 번식력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옛날 산신제(山神祭) 때에 성기를 드러내고 춤을 추었다는 보고가 있다.

  어로(漁撈)의 행위를 묘사한 고기잡이배와 그물에 걸려든 고기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실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아마도 당시에는 반구대 지역이 사냥과 어로의 풍요를 빌고 그들에 대한 위령(慰靈)을 기원하는 주술 및 제의(祭儀)를 행하던 성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물의 표현 중에 소위 X레이 화법(畵法)이라고 하는 배 부분의 내장(內臟)을 표시한 것이나 입에서 시작하여 내장까지 닿는 음식을 내장으로 보내는 일종의 생명선의 표현은 동물들의 생명 운영과 그를 위한 기본기관이 들어 있는 부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의 한 표현으로 보인다.

  이 암각화의 연대에 관해서는 신석기시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과 청동기시대의 작품이라는 설 등이 있다. 시기가 차이가 나는 표현양식과 내용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암각그림 모두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원하는 그림을 추가하는 등 신앙행위의 장소로서 계속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울주 천전리 각석 蔚州川前里刻石

  1970~1971년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발굴하였다. 시베리아를 제외한 중국 ․일본 등 극동지방에서는 한국에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제1암각화는 가로 10m, 세로 3m의 커다란 바위에 상고시대로부터 신라 말기에 이르는 많은 기하학적인 문양과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명문은 김씨 왕권을 수립한 사람들이 이곳을 순례하고 그 기념으로 새긴 것으로 추측되는데, 고관이 행차하는 장면과 기마인물상 등을 단순한 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2암각화는 북유럽 또는 시베리아 등지의 신석기시대 미술과 직결되는 소위 사냥예술인데 사슴 ․호랑이 ․멧돼지를 비롯하여 고래 ․곰 ․토끼 ․여우 등의 동물들과 사슴사냥하는 광경, 고래잡이하는 모습과 기타 동물들 약 150여 점이 새겨져 있다. 이 제2암각화의 기법은 모두떼기[全面彫]와 선조(線彫)를 원초적인 기법으로 하였는데, 신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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