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족, 직장

교사로 산다는 것

고인돌인 2010. 2. 9. 11:59

[일사일언] 교사로 산다는 것

 

 우장문

 

  최근 임용고시에서 이론과 논술 시험을 모두 통과한 예비교사를 대상으로 수업 실연 평가를 한 적이 있다. 9분 동안 주어진 주제를 도입·전개·정리까지 모두 보여주어야 하는 시험이다. 내가 본 예비교사들은 하나같이 능숙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실력을 갖추고 또렷한 목소리와 당당한 자세로 나서는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어설프기만 했던 나의 초년 교사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교직에 나올 때에는 국립 사범대에 입학하는 것이 곧 임용시험이었다. 졸업만 하면 바로 교단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한 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채로 고3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으니, 의욕만 가지고는 시행착오를 막는 데 역부족이었다.

 

사범대를 갓 졸업한 나의 첫 발령지는 경기도 포천의 한 고등학교였다. 3월에도 칼바람에 귀가 얼얼하던 그곳은 두 차례 검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군(軍) 주둔지역이라 수업 중 대포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무리 지어 도망가는 학생들을 찾아 밤늦도록 집집마다 찾아다닌 적도 있었다. 결손가정 학생을 아침마다 깨워서 같이 등교해야 했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컸다.

 

그렇게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지도 벌써 26년이나 되었다. 한때 선생님들을 매도하면서 정년을 단축했을 때를 제외하면 교사인 내가 항상 자랑스러웠다. 방학에도 출근하고 비좁은 집 때문에 가족의 원성을 듣기는 하지만, 몇 백억 원을 주어도 만들지 못할 제자들을 둔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만난 스물여섯 번째 졸업생들이 곧 교문을 나선다.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모습을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내려다보면서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자들을 세상 바다에 놓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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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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