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가족, 직장

고인돌에 맺힌 눈물

고인돌인 2010. 2. 25. 23:41

조선일보  2010.02.24 / 문화 A23 면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아래쪽에 있는 오지의 섬 '숨바'는 나에게 깊이 각인된 곳이다. 인천공항에서 9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찾아간 이곳은 제주도의 4배 정도 크기인데, 소·개·염소·돼지와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는 곳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섬의 하나이다.

숨바섬에는 수천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데, 대다수가 지금부터 100년 이내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기록이 없어 축조시기를 구전(口傳)에 의존해야 했고, 발굴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고인돌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축조시기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숨바섬 고인돌의 특징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과 가족들이 여러 대에 걸쳐 합장되어 오고 있으며, 거대한 고인돌을 만들기 위하여 4~5년간 재산을 모아야 한다는 점 등이다. 또 고인돌 위에서 빗물을 이용하여 빨래를 하거나 곡식의 낟알을 벗기는 등 생활공간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한다.

부족사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이곳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진을 찍고 싶어 우르르 모여들고, 차량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고는 좋아서 팔짝팔짝 뛰는 모습이 무척이나 정겨워 보였다.

또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을 머금고 있어서 카메라에서 손을 뗄 새가 없었지만, 하루에 두 끼밖에 먹지 못하는 어려운 생활과 자식이 큰 병으로 누워 있어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고달픈 삶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특히 말라리아에 걸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벌거벗고 누워 있던 아이의 뒷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새벽 귀국길에 비행기 창에 기댄 채 캄캄한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정말 큰 행운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우장문·수원 숙지고 역사교사

'책, 가족, 직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피리  (0) 2010.05.10
소화놀이마당  (0) 2010.05.05
교사로 산다는 것  (0) 2010.02.09
친구에게  (0) 2009.12.29
축시  (0) 2009.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