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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모습이 그립습니다.

고인돌인 2007. 2. 21. 23:04
 

아버지 모습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오늘이 49재입니다.

아침에 아버지가 계신 산소에서 상을 차려놓고 제사를 드렸지만 아버지의 정겨운 모습은 뵐 수가 없었습니다.

산소에서 아버지께 술을 올리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보고 싶은데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에 매달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효자라고 나름대로 자위를 했는데 저는 나쁜 불효자였나 봅니다. 하기는 임종을 보지 못했으니 이런 불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모습은 하관이 진행되면서 엉엉 울고 있는 저에게 그만 저리로 가라는 손짓을 하시고는 사라진 이후로 꿈속에서도 아버지 얼굴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잔을 올리면서 둘째 누나와 둘째 형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는데 저는 아버지 생각을 하면서도 왜그런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요즈음 무슨 일을 해도 의욕이 나지 않습니다. 저의 홍보부장님이셨고, 저의 든든한 후견자 이셨던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습니다.

제가 처음 만들었던 책인 “화성시의 선사문화”를 가지고 갔을 때 이것을 무슨 가보나 되는 듯이 와이셔츠 곽에다 조심스럽게 넣어서 보관하시다가 동네 어른을 비롯하여 어떤 분이 오시더라도 책을 꺼내서 자랑하시기에 바쁘셨죠. 또 박사학위 사진을 벽에 걸어놓으시고는 우리 집안에 박사가 나왔다면서 너무 좋아하셨죠. 가난으로 학교 근처에도 가시지 못해서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시지는 못했지만 자식을 위하는 마음은 거의 박사급이셨던 아버지시죠.

두 번째 책인 “경기지역의 고인돌 연구”가 출판되고 이것이 소개된 신문을 가지고 많은 분들께 자랑을 하셨던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좋아해주시던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무슨 일이든 할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제 이름으로 된 무엇이든 나오면 한 걸음에 달려가서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의 저의 낙이었나 봅니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는 자식들의 효도를 많이 받고 원 없이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나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너무 너무 그립습니다. 아버지...

문득 전화기를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면 10초도 되지 않아서 전화기는 꺼져 있었죠. 자식들 전화요금 많이 나올까봐 끝 인사도 하기 전에 아버지는 항상 먼저 전화를 끊으셨죠. 아버지의 이러한 절약 정신이 무일푼과 무 학력으로 우리 7남매를 잘 키우신 원동력이 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께 전화를 드릴 때면 아버지를 바꾸어달라는 말이 입에 뱅뱅 돕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요. 편찮으셔서 힘이 없이 대답만 하실 때의 목소리라도 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버지 내일부터 봄방학을 마치고 정상적으로 출근하게 됩니다. 학교생활이 힘든 면도 많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저를 많이 응원해 주세요. 저도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로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라도 가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2007년 2월 21일

막내아들 우장문

(2007년 2월 22일 mbc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방송됨, 아버지가 방송에 나오는 것을 생전에 바라셨기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좋아할 것으로 생각되었다.)